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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커뮤니케이션즈 2013-06-15 00:45:53
[월간 웹] 표지 메이킹 스토리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MAKing STORY디지털 산업의 태동기부터 산업과 함께해온 월간 웹이 15주년을 맞았다. PC 통신과 인터넷 시대 서막이 열리고 벤처 붐이 시작되던 호황기를 지나, 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눈물겨운 시기를 함께하고 현재까지 늘 산업의 곁에 있었던 웹의 평범한 이야기. 한 장의 포스터에 담기엔 너무 많은 이의 기쁨과 눈물이 있다. ...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MAKing STORY
디지털 산업의 태동기부터 산업과 함께해온 월간 웹이 15주년을 맞았다. PC 통신과 인터넷 시대 서막이 열리고 벤처 붐이 시작되던 호황기를 지나, 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눈물겨운 시기를 함께하고 현재까지 늘 산업의 곁에 있었던 웹의 평범한 이야기. 한 장의 포스터에 담기엔 너무 많은 이의 기쁨과 눈물이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감정 외계인’ 에일리모 캐릭터는 그들의 역사와 감정을 대변한다.
제작기 감성디자이너 BK 정병국
step 1. 최초 기획
초반 기획은 15주년을 맞은 웹의 스토리를 브랜드화해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 것. 앱솔루트 보드카 사례에서 보듯 참여기업 모두에게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는 브랜딩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최초 기획으로 표지 담당자와 김민채 디자인실장이 참여해 콘셉트를 논의했고, 이예근 편집장 동의하에 류호현 발행인과 함께 ‘월간 웹의 스토리’를 담기로 했다.
step 2. 표지제작자 선정
다양한 포스터 디자이너가 물망에 올랐으나, 월간 웹 4월호 ‘relay talk’ 인터뷰이 정우열 대표의 자몽커뮤니케이션즈를 선정했다. 자몽 산하 에일리모 벤딩머신 스튜디오의 캐릭터 에일리모는 한류 스타가 되기 직전의 콘텐츠. 선정 이유는 디자이너의 감각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경험이다. 에일리모는 현재 버블버스터, 피키캐스트 등과도 콜라보 중이다. 젊은 나이(31)에 인테리어, 건축, 상품 디자인 등 실무 감각이 뛰어난 디자인 총괄 정병국 씨를 일단 만나기로 했다.
step 3. 최초 미팅
자몽커뮤니케이션즈의 정우열 대표와 정병국 디자이너, 김민채 디자인실장, 이예근 편집장과 담장자가 미팅을 진행하고 최초 콘셉트를 논의했다. 에일리모 캐릭터와 웹의 히스토리가 섞여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은근한 콜라보 효과를 갖는 것이 목적이다.
step 4. 초안 제작 및 제작의도
(정병국)표지 콘셉트는 ‘히스토리’, ‘빈티지’라는 키워드를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두 키워드로 만들어진 키 비주얼을 통해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여러 개의 책이 놓여진 표지 디자인은 그동안의 월간 웹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오랜 시간 손때가 묻고 닳아 있지만 월간 웹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장인정신으로, 그리고 꾸준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런 책이야말로 명품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에일리모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7가지의 감정을 가진 캐릭터로 출발했다. 에일리모가 월간 웹 독자들과 웹의 히스토리를 같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이번 표지일 것이다.
step 5. 제작기 - 초안
step 6. 제작기 - 수정
두 번째 미팅 후 완성된 초안에 월간 웹의 역사를 추가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목표는 에일리모 캐릭터를 해치지 않으며, 제호/바코드/QR코드/검색뉴스를 명확하게 보이게 하는 것. 캐릭터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기존에 띠를 두르고 삽입했던 콘텐츠 목록을 아홉 개의 캐릭터 배경에 나눠 삽입했다.
월간 웹의 히스토리를 담도록 류호현 발행인, 이예근 편집장, 김민채 디자인실장과 담당자가 회의 후 캐릭터 상단과 측면에는 월간 웹의 예전 제호들을 삽입해 캐릭터 하나를 웹의 역사 하나로 대변했다. 모든 에일리모가 월간 웹의 표지모델이며, 9개의 포스터는 끊임없이 진화한 월간 웹을 상징한다. 이에 맞춰 정병국 디자이너는 포스터 뒤 낡은 종이가 겹쳐진 것과 측면 실선을 추가해 ‘고문서’ 같은 책의 느낌을 추가했다.
월간 웹 텍스트를 올리면 캐릭터와 겹치므로 약간의 레이어 조절이 필요했다. 이 때 레이어 정리를 잘 했다면 아주 쉬운 게임처럼 조절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작업이 다 끝나면 (BK의 경우) ‘빈 레이어’를 만든 다음 ‘레이어 설명’을 메모해놓는다. 팀 작업을 하는 기업의 경우 원본파일을 넘기고 2차 작업할 때 모든 작업자가 빠르게 파일의 구조를 이해하고 수정하는데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가상레이아웃 틀을 ‘Hide’한 다음 부분적으로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일일이 확대하면서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면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인쇄했을 때 크게 보이기 때문.
이렇게 모든 작업이 완성됐다. 기존 포스터에는 없던 웹의 콘텐츠와 텍스트를 추가하면서 에일리모의 얼굴들이 일부 가려지게 됐지만 모든 캐릭터가 표지모델로 변화하면서 ‘고문서’ 혹은 ‘패션지 한류스타’ 느낌으로 에일리모를 더욱 부각했다.
Tip! 빠르고 쉽게 디자인하기! 작업시간을 줄일 수 있는 3D 모델링, 일러스트, 포토샵 등 각종 디자인 노하우(꼼수)는 감성디자이너 BK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URL: http://mazdamiata.blog.me
돈 벌려고 창업했다, 우아하게 정우열 자몽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자몽커뮤니케이션즈 2013-06-15 00:45:11
돈 벌려고 창업했다, 우아하게 정우열 자몽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돈 벌려고 창업했다 우아하게, 정우열 자몽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스타트업 시장 최대의 편견은 ‘슬프고 애잔하고, 꿈을 팔고, 투자를 못 받으면 죽고’하는 등의 처절한 이미지다. 이들이 꿈을 팔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어린 대표들이 가난하고 눈물겨운 존재로 비치는 이유는 ‘그...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돈 벌려고 창업했다 우아하게, 정우열 자몽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스타트업 시장 최대의 편견은 ‘슬프고 애잔하고, 꿈을 팔고, 투자를 못 받으면 죽고’하는 등의 처절한 이미지다. 이들이 꿈을 팔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어린 대표들이 가난하고 눈물겨운 존재로 비치는 이유는 ‘그저 그런 기사가 잘 팔리기 때문’일까? 제니퍼소프트의 등장으로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까발려진 요즘, 제니퍼소프트보다 더 젊고, 더 가능성 있는 기업, ‘자몽커뮤니케이션즈’를 만났다.
자몽커뮤니케이션즈 정우열 대표
학자로, 투자자로, 경영자로
자몽커뮤니케이션즈(이하 자몽)의 정우열 대표는 서른을 갓 넘긴 나이지만 밀도 있게 살아온 인물이다. ‘해줄 건 없다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젊은 부모님과 가풍 아래 성장한 그는 공부가 재미있어 서울대에서 약학을 전공했다(하고 싶은 일이 공부라니 약간 재수 없다). 기자가 만나는 서울대 출신 대부분은 예의 바르면서도 배경에서 오는 쿨한 맛이 있다. 정 대표는 조금 다르게 온화하고 따뜻하며 느리다. 재벌의 여유까지 느껴졌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정말 그랬다. ‘학자’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창업 계기는 여느 대표와 조금 다르다. 박사 1학기까지 이수하며 느낀 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당시 가장 높이 갈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지도교수 위치였는데, 해당 분야 연구자들은 계약직 처리되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연구에 매달려야 한다. 생업 앞에서 공부를 더 이상 재미로 할 수만은 없었다.
다음 직업은 투자자. 고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주식투자를 본업으로 결정했다. 친구와 합숙소를 마련한 뒤 시작한 투자사업의 결과는 어땠을까? 다른 ‘충격!’성 기사에 익숙한 여러분은 이 부분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서울대 때려치우고 주식투자한 대학원생 결국…’ 정도의 전개로 위안을 얻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해답은 반대. 3개월 만에 수억을 벌었다.
당시 정 대표의 생활은 7시 기상, 뉴스 열람, 10시~2시 투자였는데, 하루에 200~300만 원의 수익이 쏟아져 들어왔다. 주식투자 대박의 비결을 물었더니 순순히 대답했지만 범인인 기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조금 더 재수 없었다.하루에 1,000만 원으로 8,000~9,000만 원을 벌 때도 있고, 그 이상 잃기도 하는 생활을 정 대표는 ‘나태하다’고 표현했다. 즉, 이런 삶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재밌고 돈도 많이 버는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정 대표의 눈에 동생이 들어왔다.
태어나보니 동생이 정병국
동생인 정병국(감성디자이너 BK) CDO(디자인총괄)는 서른하나의 나이에 10년 이상의 업무력을 가진 디자이너.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보다는 현장을 택한 인물이다. ‘간판집’부터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도 부족해 중국까지 진출했던 ‘현장 인력’이다. 자몽 합류(2010) 전까지 그는 건축/인테리어/제품/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력을 쌓았다. 학자의 길을 걸어온 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 앞서 말한 가풍이 동생에게도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못 다루는 툴도 없고, 못하는 디자인도 없는 ‘젊은 거장’ 디자이너인 동생은 당시 학력으로 인해 일반 기업에서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빠르게 비즈니스 파트너로 동생을 선정했다. 동생의 실력과 정 대표의 인적/학력 인프라를 결합하는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실제로 자체 콘텐츠 개발 이전 외주 사업은 ‘동생빨’로 진행했다고 보면 된다.
국내 검색 포털에 ‘정우열’, ‘에일리모’를 검색해보면 어떤 뉴스도 나오지 않는다. 홍보를 왜 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말에 정우열 대표는 웃으며 ‘어떻게 하는 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기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남들이 먹던 음식을 다시 요리하지 않고 남해에서 다금바리를 건져낸 상황이었다.
외주를 진행하기 전부터 자체 콘텐츠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회사의 안정세와 자금력을 위해 2년 동안은 대행에 매달렸다.
자몽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감상할 수 있는데, OOH, 인테리어, BI, 건축 등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결과물들이 한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음을 확인 가능하다. 클라이언트도 유명 커피숍, 방송국, 삼성전자 등 굵직하다. 매출은 두말할 것 없다.
감성으로 만든 감정 외계인
모든 디자이너가 그렇듯, 외주 작업은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성에 악영향이나 피로를 줄 수 있다. 일을 받아 지시하는 형과, 디자인 작업을 총괄하는 동생의 사이가 처음으로 틀어졌던 것도 이때다. 외주작업이 일시적인 금전만 가져다주는 단점도 있다. 회사가 안정세에 접어들 즈음 그들은 외주를 줄이고 자체 콘텐츠인 캐릭터 사업을 론칭하기로 한다.
에일리모는 외계인(Alien)과 감정(Emotion)의 합성어다. 불교의 칠정(희로애락애오욕)의 감정을 가진 외계인으로, 작년 8월 출생 신고를 마쳤다. 콘텐츠진흥원의 신규캐릭터개발사업 지원이 결정됐고, 피규어/포스터/페이퍼아트/각종 디자인 상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양산되고 있다. 감정이 있는, 반대로 소실된 느낌도 주는 귀요미 에일리모는 현재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작업 중이기도 하다.
에일리모의 강점은 외관과 더불어 어떤 형태로도 변신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출시된 다양한 제품 외에도 여러 ‘물건’들로 출시될 예정이며, 에일리모의 기본 콘셉트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웹툰 등 미디어 콘텐츠로도 변신 중이다. 정우열 대표를 제외한 네 명 반(한 명은 투잡 중)의 인물이 이 모든 콘텐츠 저작을 소화하고 있다. 패션 제품으로도 해외 진출이 예정돼 있다. 현재 국내 캐릭터 사업은 인기 만화가이자 파워블로거인 마조앤새디 ‘마조웍스’의 등장으로 인해 활기를 띠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보완할 경우 차세대 한류스타가 될 수 있는 에일리모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인생 반 만에 은퇴하기
한창 수다를 떨던 중 에일리모가 정우열 대표와 자몽의 최종 콘텐츠가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정 대표는 시종일관 조용한 자세로 “최종이 돼야 한다”며 에일리모 사업에 많은 것을 걸고 있음을 내비쳤다. 정우열 대표는 딱 마흔이 됐을 때 은퇴하고, 투자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마흔에 은퇴라니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싶었는데 그 삶의 궤적을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형제와 자몽커뮤니케이션즈의 콘텐츠이자 국가의 콘텐츠가 되기도 할 에일리모가 ‘우주적 대박’을 치고, ‘꼭 마흔 살에 은퇴하라’는 ‘욕 같은 덕담’으로 그와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에일리모는 페이스북 페이지(/aliemovendingmachin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우열 대표가 이어주는 다음 호 주자는?
답답한 사무실을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오피스어택’의 한성원 해피래빗 대표가 다음 주자. 한 대표는 오피스어택과 더불어 건강한 복지 커뮤니티를 만들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다음 주 그들의 오피스어택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나무링크 2013-06-14 14:19:04
내 삶이 나의 전공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내 삶이 나의 전공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 NAMULINK흔히 대학생활을 자유와 낭만으로 묘사하지만 경우에 따라 대학은 투입대비 산출물이 뛰어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사람도 실무자가 아닌 경우가 허다한 대학에 반대하듯, 진학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이를 만났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그토록 ...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내 삶이 나의 전공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
NAMULINK
흔히 대학생활을 자유와 낭만으로 묘사하지만 경우에 따라 대학은 투입대비 산출물이 뛰어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사람도 실무자가 아닌 경우가 허다한 대학에 반대하듯, 진학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이를 만났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는 ‘소셜 마케팅’과 ‘플랫폼’ 전문가로 돌아왔다. 겸손하게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 그의 레퍼런스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다.
"학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따고 각종 산업 기능사 자격증을 섭렵하는데, 단기 목표로 자격증 하나를 선택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자격증과 서버 엔지니어 생활이 그에게 대기업 입사 기회를 가져다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는 글쓰는 것이 좋아 국문과로 진학하려 했던 국어교사 지망생이었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진학을 포기했다. 어른들이 하는 “기술 배워라, 기술 배우면 먹고 산다”는 말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박 대표는 홀로 서울로 입성하고, 기술 중 비전이 최고인 ‘컴퓨터 기술’을 배우러 한 직업학교에 입학해 생활비를 근근이 벌어가며 ‘기술’을 배운다.
스물한 살 첫 직장은 여성 의류 쇼핑몰. 당시 패션에 무관심한 박 대표는 라운드넥과 브이넥도 구분할 줄도 몰랐던 초짜지만 함께 일하는 추억의 ‘웹마스터’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직접 옷을 팔았다. 군대를 마치고도 이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옥션에서 카테고리 내 니즈가 있는 시장을 찾던 중 ‘에스닉’ 키워드를 도출했다.
물품 수급을 위해 무작정 이대 앞 외국인 골목을 방문해 액세서리를 팔아주는 조건으로 ‘인도 의상을 팔자’고 제안했고, 외국인의 승낙을 받아 재도약한다. 보통 벌당 3,000~4,000원의 수익을 얻는 게 기본 의류 사업이었다면 에스닉 의상은 2만~3만 원의 수익을 안겨다 준다. 그런데 사업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인도엔 겨울이 없다. 이 젊은이는 자신이 만든 시장을 져버릴 수 없어 의상 제작자를 찾아 제작도 해봤으나 ‘인간이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드는 바람에 포기했다. 사진을 멋들어지게 찍어 물건은 모두 팔았지만 모두 반품됐다. 인간이 입을 수 없으니까.
이후 그는 서버 엔지니어로 전업해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학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따고 각종 산업 기능사 자격증을 섭렵하는데, 이름도 생소한 유통관리사, 문서실무사, 씨스코, CCNA 등 자격증 스물두 개를 땄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단기 목표로 자격증 하나를 선택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자격증과 서버 엔지니어 생활이 그에게 대기업 입사 기회를 가져다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잠깐 일을 쉬던 박 대표는 자격증을 위해 드나들던 상공회의소 근처의 휘황찬란한 건물을 보며 ‘이런 데 다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던 바로 그날! 전 회사의 팀장에게 “이 회사 사람 뽑으니 면접이나 봐라”라는 말을 듣고 자격증 몇 개를 추려 면접지를 확인했다. 놀라웠다. 바로 그 건물이었다. 운명이다. 학력에 대한 편견 섞인 면접에서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밝힌 대표는 재계 50위 안에 드는 대기업 대성그룹에 당당히 입사하며 운명임을 증명한다.
당시 맡은 일은 네트워크 엔지니어였는데, 이전의 직업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십 대 초중반 직무 과정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듯 좋은 교육이 된 것이다.이후 그는 번듯한 직장을 뒤로하고 창업 세계로 뛰어들었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현재 주력 서비스인 ‘러브송데이’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엉망진창의 축가들을 보며 막연히 떠올렸다. 그러다 서바이벌 오디션 ‘슈퍼스타K’에서 김보경의 눈물을 보며 ‘능력 있는 친구가 왜 돈을 벌지 못할까’하는 아이디어와 결합돼 시작됐다.
이는 대표의 노트 속에 고이 잠자던 아이디어였지만 페이스북 창립을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며 현실화시켰다. 일주일 만에 페이스북을 만드는 주인공을 보며, 본인의 아이디어가 ‘축가계 페이스북’이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러브송데이는 단순한 축가 대행사가 아니다. 음악 전공자가 스스로를 등록하고, 예비부부가 직접 선택하는 오픈마켓이며 그는 여기서 약간의 수수료만 받는다.
단순 소개에서 멈추지 않고 3만~5만 원 정도 하던 축가 가수들의 몸값을 10만 원 수준으로 올려 그들이 가수가 될 때까지 김보경과 같은 가난한 세월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대표의 마음이 담겨있다. 여기에 폭리를 취하던 각종 웨딩 업체와의 연결을 통해서도 수익이 생긴다. ‘웨딩 플랫폼’이 완성된 것. 현재의 러브송데이는 박 대표가 생각한 것의 30%만 구현됐지만 축가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엔 그의 뛰어난 소셜 마케팅 방법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업체 운영을 준비하며 소셜이 중요한 시기가 올 거라고 판단한 박 대표는 관련 도서가 없는 걸 깨닫고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SEO(검색엔진최적화)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재밌는 자료를 위해 구글 검색을 달고 산다. 전문가와 놀러 간 무인도에서 ‘맥주를 먹고 싶다’는 ‘갑’의 한마디에 왕복 40분을 뛰어 맥주를 사왔던 일화도 있을 정도로 절실했다.
그가 만든 페이지는 대 기업용 57만, 소상공인용 30만의 좋아요를 기록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며, 페이스북에서 삭제조치 당한 ‘전과’가 있다. 현재 박 대표는 여러 기업에 마케팅 컨설팅을 지원 중이며 그가 손댄 페이지나 유튜브는 좋아요/조회수가 10만은 기본이다. 기업 페이지 이벤트 포스팅 1회의 단가는 전문가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자사 브랜드 러브송데이는 상품 이벤트를 하지 않는 페이지지만 국내 브랜드 페이지 중 라이크 수 기준 Top 20내에 꼽힌 적이 있으며 현재도 상위 랭커(약 9만 2천 명)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러브송데이의 경쟁 업체 폐업 시 도메인을 모두 사들이고 있으며, 꾸준히 블로그 포스팅 중이다. 러브송데이의 가수들은 실용음악 전공자인 동시에 MBC 서바이벌 오디션 ‘위대한 탄생’ 출연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들 중 두세 명이 현업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꿈은 웨딩 플랫폼 구축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불합리함을 해소하고 전문 인력에 제대로 된 몸값을 보장하는 중계 플랫폼을 만드는 것. 이미 대기업 연봉을 뛰어넘은 그이지만 타인에 대한 선의로 무장하고, 시장을 창출할 줄 알며, 진화하는 마케팅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앞날의 찬란함이 기대된다.
심플리 2013-06-13 12:44:16
심플리 2013-06-13 12:4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