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인드] 할 수 있다고 하면 안 된다.

수년 전,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사상가이며 기술과 산업 영역에서 유력한 잡지인 'Wired'의 초대 편집장을 지낸 케빈 켈리(Kevin Kelly)를 한 지인의 사무실에서 열린 워크숍을 통해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켈리의 '기술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Technology Wants) 등과 같은 책을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매우 기대했었던 만남이었다.

실제 만나본 켈리는 작은 키에, 벗겨진 머리에,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호기심이 넘치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디지털 사회에 대해 명철한 분석을 제시하면서도 본인은 소셜 미디어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하는 이 도사 같은 노인은 모든 것이 표준화되가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기인이었다. 


<케빈 켈리. Aeranis 사진. CC BY>

그리고 그때 있었던 흥미로웠던 경험 중 하나는 켈리의 명함을 받아본 것이었다. 본인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 켈리의 명함은 노란색 바탕에 자기 이름, 간단한 연락처 밖에 없었다. 구차한 자기 이력과 경력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아서, 작은 명함이 비좁아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명함과 딴판이었다.

그땐 명함치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간명한 명함을 받아볼 일이 또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명함을 주는 사람치고 허술한 사람은 없었다. 자기 자신을 꾸밀 말이 따로 많이 필요없는 사람은 충분히 실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명함이 복잡한 사람치고, 신뢰하고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시행착오는 많을 수록 좋고, 빠를 수록 좋고, 이를 수록 좋지만, 대가가 되는 데 필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지은 작품은 무수하지만, 우리는 '레미제라블'만으로 그를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다. 애플이 만들고, 실험했던 제품도 여러 개가 있지만, '아이폰'만으로도 이 기업은 충분히 전설이다. 학계에서 궁극적 명예인 노벨상도 그 학자의 업적 전부를 보고 주는 것이 아니라, 한, 두개의 중요한 학문적 공헌을 인정하여, 수여하는 것이 룰이다. 많은 것을 다 잘 하려고 하면, 역설적으로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탁월한 브랜드의 특징은 다수의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압도적으로 탁월한 고객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에 12억 달러에 인수된 쟈포스 같은 경우는 고객 서비스에 한해서는 누구 못지 않다는 아마존도 한수 접을 만큼 철저한 경쟁력을 보였다. 혁신이란 내가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할 수도 없는 일을 잘 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내가 잘하는 일을, 잘해야만 하는 일을 더 잘할 때 가능해진다.

구체적으로, 이 'Less Is More'의 철학을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끓임없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그러나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 'No'라 말하는 연습과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어떤 사실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옳지 않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 훨씬 쉽듯이, 'Yes'보다 'No'가 생산성을 높이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 유리한 옵션이다. 해내야 할 일은 배수의 진을 쳐서라도 해내야겠지만, 할 필요가 없는 일은 줄이면 줄일수록, 비용도 줄고, 리스크도 준다. 그리고 반대로 그렇게 줄여야 할 걸 줄일 때만, 해야 할 것에 더 집중해,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어릴 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고 배웠다. 아버지는 그걸 가훈으로 내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커서 보니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보다 더 중요한 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마는 것'이었다. 독에 구멍이 나 있으면, 아무리 물을 부어봤자 소용이 없다. '도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절제'였다. 참된 용기와 헛된 만용, 진정한 야심과 어설픈 욕심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냉엄한 시장이 징벌하고 문책한다.

생존하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번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1원칙은 'Less Is More'다. 무언가를 더하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영역은 무언가를 뺄 것인가다. 상위권 플레이어는 잘 하는 사람이지만, 피겨퀸 김연아 같은 최상위권 플레이어는 빈틈이 없는 '클린 플레이'를 한다는 걸 기억하라.

적은 것이 더 아름답다.

김재연

기술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 정치학도. 네이버 서비스 자문위원을 맡은 적 있고, 스타트업에서 전략 매니저로 일한 바 있다. 블로터닷넷과 주간경향 등에 IT 칼럼을 기고하고, 쓴 책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소셜 웹이다', '소셜 웹 혁명',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