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이직만 7번...“40·50은 ‘창업’ 적기”

[부제목]공공데이터 활용한 3D콘텐츠 제작·플랫폼 업체 ‘쓰리디뱅크’ 김동욱 대표


1968년 원숭이띠의 이 남자는 불과 2년 전, 만 47살의 나이에 ‘창업’을 했다. 그 전까지 20여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회사를 옮긴 그의 이직 기준은 항상 ‘도전’이었다. 이 도전들이 경험으로 쌓여 창업이라는 새 도전을 하게 된 40대 중후반의 지금을 “안정이 아닌, 도전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김동욱(만 49세·사진) 쓰리디뱅크 대표를 비즈업이 만났다. 
  
김 대표가 지난 2015년 설립한 ‘쓰리디뱅크’는 3D콘텐츠 제작·플랫폼 업체다. 공공데이터 등을 활용해 만든 3D콘텐츠 8,000여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들을 홀로그램으로 변환, 박물관·전시관·미술관 등에 전시·납품해 수익을 내고 있다. 쓰리디뱅크는 문화재청·중앙박물관 등에서 제공하는 각종 문화재 및 유물 데이터를 3D콘텐츠화하고, 이를 홀로그램으로 전시하는 서비스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제5회 문화데이터 활용 경진대회’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3D 스캔 데이터를 3D콘텐츠로 변환하는 기술로 6개의 특허 출원 및 등록이 돼 있습니다. 예컨대 신라·고려·조선시대 유물 등과 관련한 3D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3D콘텐츠로 변환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홀로그램 디바이스에 탑재하면 3D 홀로그램 전시가 가능하죠. 디바이스를 설치할 작은 공간만 있으면 각종 문화재·유물을 3D 홀로그램으로 무제한으로 전시할 수 있는 것인데요. 영상을 직접 제작해야 하는 기존의 3D 홀로그램 서비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훨씬 더 많은 전시가 가능합니다.”

 

각각 서울 중앙박물관(왼쪽), 경북 경주시의 경주화백컨벤션센터(오른쪽)에 설치된 쓰리디뱅크의 홀로그램 전시물


쓰리디뱅크의 경쟁력은 이런 3D콘텐츠를 다른 웹페이지 등에 간편하게 임베딩(embedding)할 수 있게 함으로써 콘텐츠의 활용 폭을 획기적으로 늘렸다는 데 있다.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링크만 복사해 다른 웹 공간에 쉽게 배치할 수 있는 것처럼 쓰리디뱅크의 웹페이지(http://www.3dbank.xyz)에 게재된 모든 3D 콘텐츠는 다른 웹페이지 내에서 손쉽게 구현이 가능하다. 

 

 

“쓰리디뱅크는 3D콘텐츠 업계 내의 ‘유튜브’ 같은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 웹페이지에 3D콘텐츠를 모이게 하고, 이 콘텐츠들을 각각의 디바이스에 맞게 ‘임베디드 뷰어’만 제공하는 것이죠.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국내에선 저희가 유일하고, 해외에서도 아직 못 찾았어요.” 

 

쓰리디뱅크 홈페이지(왼쪽)에 게재돼 있는 백자철화매죽문호 3D 콘텐츠와 3D임베디드 뷰어 서비스를 활용한 숙명여대 박물관홈페이지


쓰리디뱅크를 이끌고 있는 김 대표의 나이는 우리나라 셈법으로 51살. ‘하늘의 명을 안다’는 뜻의 ‘지천명’을 넘긴 늦깎이 사업가다. 지난 2015년 3D콘텐츠 분야로 창업을 결심하기 전까지 그가 거쳐 간 직장만 무려 7곳.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이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해왔을 정도로 업무 성과가 탁월했던 그가 마치 역마살 낀 사람처럼 잦은 이직을 감행한 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가 섬유공학과를 전공했는데, 학교 공부는 안 하고 따로 사설학원을 다니며 컴퓨터 언어를 배웠어요. 당시는 주판 배우는 사람이 더 많았을 때니까 학원비가 대학 등록금 1년치 만큼 했는데, ‘앞으론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익혔죠.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직전엔 벤처회사에 입사한 적도 있어요. 금융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카드 관련 업체에 입사하기도 했고요.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남들보단 많은 편인데, 그에 맞춰 계속 직장을 옮기다보니 7번이나 이직을 하게 됐죠.”





김 대표가 3D콘텐츠에서 미래를 본 건 그의 마지막 직장터였던 중국에서였다. 국내 제 1금융권의 중국법인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글로벌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됐는데, “인터넷 없는 세상을 현재는 상상할 수 없듯, 곧 3D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5년 9월 한국에 되돌아와 1개월 만에 ‘쓰리디뱅크’를 설립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주요 업(業)으로 삼아온 김 대표에게 3D분야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컴퓨터 언어를 독학했던 때의 ‘무대포 근성’을 또 다시 살려 3D분야를 문자 그대로 ‘손목이 나갈’ 정도로 탐닉했다고 한다. 그 결과 김 대표의 오른손목은 현재 보호대 없인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그 덕에 “3D프린팅을 강의하는 업체 강사가 쓰리디뱅크의 출력 기술에 대해 궁금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창업 전 김 대표가 거쳐 간 회사 가운덴 유독 ‘뱅크’가 많다. 대만의 타이신 은행부터 마지막 직장이었던 하나은행까지. 인터넷 열풍 당시 잠시 몸을 담았던 벤처기업 이름에도 ‘뱅크’란 단어가 붙어있다. 본인의 첫 창업 회사 이름도 '3D뱅크’로 지었을 정도니 ‘뱅크’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 
  
세상의 모든 3D콘텐츠를 저장하는 ‘뱅크’가 되겠다는 꿈을 담아 사명(社名)을 그렇게 지었다는 김 대표. 그는 47살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창업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건 100이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적어도 90까진 이뤄진다는 사실이에요. 그런 마음가짐 덕에 계속 직장을 옮기면서 목표로 했던 것들도 대부분 이뤘고요. 직장 때 가졌던 꿈은 크기가 작았던 것 같아요. 창업을 통해 그 꿈의 크기를 키우고 싶어요. 내 나이엔 늦었다고들 얘기 하는데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지금껏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기엔 40·50세대만큼 적기도 없다고 생각해요. 저로선 지금이 (창업의) ‘타이밍’인 것이죠.” 
/글·인포그래픽= 비즈업 유병온 기자 on@bzup.kr, 영상 촬영·제작= 비즈업 백상진·김현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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