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인드]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

유대인이 유능한 민족인 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단적으로, 전 세계 인구의 2%밖에 안 되는 이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이 이렇게 학술, 예술, 금융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건, 그들이 살아온 과정이 평탄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로마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그들은 서기 72~73년 전설적인 마사다 결사 항전의 실패 후,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고대, 중세 사회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따라 지속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 그러나 그 역시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차별은 그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례로, 중세까지만 해도 금융업은 기독교인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대 교회의 성경 해석은 금융업의 근간인 이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은 비기독교인인 유대인에게 주로 맡겨졌고, 이들이 앞으로 근대 자본주의의 꽃이 되는 금융업에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 근현대 금융사에서 대표적인 금융 권력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대인인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채권자였으니, 채무자들에게 미움을 받는 건 당연하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금융업자 샤일록이 인정없는 고리대금업자로 묘사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유대 자본에 대한 각종 뜬소문도 이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자부심 강한 그들이 제도권 내에서 활약할 수 있는 분야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그런 환경은 그들이 특정 분야에 자신들의 재능을 집중 투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긍지와 결핍의 결합이 성공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건 레바논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레바논은 19세기 실크 무역의 붕괴와 20세기 내전으로 인해 현재 약 420만 정도가 레바논에 살고 있고, 디아스포라 인구가 1천5백만에서 2천만 가까이 된다. 국내 인구의 350~470% 정도 규모의 디아스포라 인구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성공적인 이민자 집단이다. 대표적으로 2013년에 세계 부자 랭크 1위로 기록된 멕시코의 거부 카를로스 슬림, 미국의 유명한 소비자 권리 활동가이자, 작가, 정치인인 랄프 네이더, 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뉴욕대 교수이면서 작가인 나심 탈렙 같은 사람들이 레바논계 이민자 출신이다.

그리고 이들 레바논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유럽과 중동이 만나는 고대 문명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부심에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이 결합된 덕분으로 묘사한다. 구체적으로, 전란으로 인해 수시로 전기가 끓기고, 폭탄이 떨어지는 레바논에 비하면 전세계 어디에 가서 살고, 사업을 하더라도 할만하다는 뜻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바닥을 쳐봐야 크게 성공한다고 하는데, 유대인과 레바논인들의 사례를 보면 그 말이 허황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 긍지와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이 합쳐지면, 그걸 극복하려는 지혜와 의지가 생겨나게 되고, 그것이 부의 원천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지혜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굳이, 내가 디아스포라가 될 필요는 없다. 다음 조언을 유념하면 된다. 작가 나심 탈렙에 따르면 레바논인들은 자녀를 키울 때 처음 7년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주의를 시키고, 다음 7년은 문제를 일으키는 걸 내버려두고, 마지막 7년은 어떻게 자기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다. 즉, 미취학아동일 때는 아이들이 유약하니 세상에서 해를 입히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사고를 쳐봐야 위험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사소한 사고를, 자주, 많이 칠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그리고 마지막 7년은 자기가 만들어낸 위험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그래서 위험관리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운다. 험악한 환경에서 긍지를 지키며, 번영을 일궈온 그들의 지혜의 정수가 그들의 교육법에 담겨 있다. 보호가 없이는 일찍이 깨어져 버리지만, 보호만 해서는 학습하지 못하며, 책임을 배우지 못하면 위험한 사람이 된다. 

실패는 빨리, 자주, 많이 해봐야 하고, 거기서 자기 자신과 시장에 대해서 배우고, 책임을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혈기가 아닌 진정한 긍지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이 아니라,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결핍은 고난을 가장한 축복이다. 다시 도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성장 촉진제다.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연

기술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 정치학도. 네이버 서비스 자문위원을 맡은 적 있고, 스타트업에서 전략 매니저로 일한 바 있다. 블로터닷넷과 주간경향 등에 IT 칼럼을 기고하고, 쓴 책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소셜 웹이다', '소셜 웹 혁명',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