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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업 인터뷰] 공자도 사용하던 명함, 기술을 만나 100억짜리 사업이 되다

명함관리 애플리케이션 ‘리멤버’ 최재호 대표 인터뷰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에는 회사원 네 명이 펼치는 명함 경쟁’ 신이 등장한다. 잘나가는 금융회사의 부사장들이 회의실에 모여 앉아 서로 자기 명함을 자랑하는 것. 주인공 패트릭은상아색 종이에 실리안 레일’ 서체를 쓴 명함”이라며 으스대지만 동료들이 경쟁적으로 더 멋진 명함을 내놓자 이내 얼굴이 굳어진다. 한 동료가 완벽하게 디자인된 새 명함을 내보이자 패트릭은 열등감과 질투심에 휩싸여 급기야 식은땀까지 흘린다.

https://youtu.be/aZVkW9p-cCU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명함 경쟁' 장면)

단지 명함 한 장일 뿐인데 그는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사회인, 특히 자기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에겐 명함이 곧 내 얼굴’이고 첫인상을 좌우하는 상징이 되기 때문 테다. 명함의 멋 소통의 맛’의 저자 이진호 동서대학교 교수 명함은 회사가 고객이나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연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광고처럼 소통의 역할도 한다”며 85×55mm로 된 작은 예술작품은 회사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한 장의 명함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명함은 현대 비즈니스맨의 필수품이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받은 명함을 수백장씩 가지고 다닐 순 없으니 휴대전화 연락처에 일일이 옮겨 넣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해서다. 이렇다 보니 대다수 직장인들은 업무상 중요한 명함만 저장해놓고 다른 것들은 책상 서랍에 뭉텅이로 쌓아놓곤 한다. 

이런 고충은 최근 들어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모양새다. 정보기술(IT) 발달과 스마트폰 대중화에 힘입어 명함 정보를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여럿 등장했기 때문. 명함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면 명함 속 정보를 알아서 연락처에 저장해주는 리멤버’(Remember)도 그중 하나다. 최근 사용자 140만명을 돌파하며 차세대 국민앱’ 자리까지 노리고 있는 리멤버. 이를 개발한 최재호(36·사진)드라마앤컴퍼니’ 대표를 최근 만났다. 




리멤버는 모바일 앱을 실행해 명함 사진을 찍으면 이름·직함·전화번호·주소 등 명함 속 정보를 자동저장해주는 명함관리 앱이다. 지난 2014년 1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서비스 출시 2년 만에 누적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며 관련 앱 1위로 올라섰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최 대표는 미국의 비즈니스 전문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링크드인’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외국 클라이언트를 만날 일이 많다 보니 저도 링크드인’을 자주 사용했어요. 미국에선 경제활동인구의 80%가 사용하는 대중적인 SNS인데, 이상하게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는 서비스가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쓰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저는 그 이유가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시대라고 하지만 동양권에는 아직도 오프라인으로 직접 명함을 주고받는 오래된 문화가 남아있으니까요.”

동양에서 명함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00년대의 춘추 시대 사람인 공자도 깎은 대나무에 이름을 적어 명함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지금과 같은 종이 명함이 등장한 것은 15세기 무렵 중국과 일본에서인데, 관청이나 새로운 장소를 방문할 때 신분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됐다. 

17세기엔 유럽에도 명함 문화가 전파됐고 당시 귀족들은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주인이 없어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경우 방문을 증명하는 용도로 명함을 남겨뒀다. 그러나 이 시기의 명함은 단지 이름만 적어놓았을 뿐, 직업과 연락처 등을 세세하게 적은 근대식 명함은 18세기에 들어선 뒤 등장했다. 단순히 방명록’ 기능만 하던 명함이 이 시기가 되어서야 자신의 업’을 홍보하는 비즈니스의 필수 요소가 된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야 자신의 비즈니스를 홍보하는 '근대식 명함'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진 왼쪽은 18~19세기 유럽에서 사용된 명함, 사진 오른쪽은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명함을 사용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의 명함.)

우리나라에선 조선 말기부터 비즈니스 명함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근대식 명함을 사용했던 이는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과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었던 유길준으로, 민영익은 1893년 7월 외교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할 때 신분을 밝히는 용도로 명함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위 관료나 일부 유명 인사만 사용할 수 있었던 명함은 인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민간 인쇄소 이문사’가 문을 열며 지금과 같은 크기와 모양을 갖춘 명함이 대량 생산·보급된 덕분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도시로 쏟아져 들어온 한반도의 일꾼들은 이 손바닥만 한 명함에 성공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담아 가슴 한 켠에 품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가로 7㎝, 세로 5㎝의 종이 명함 시대는 끝날 것 같았다. 모든 영역에서 온라인·모바일화가 본격화됐고 청첩장, 신용카드 등도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되는 시대니 명함을 주고받는 관습도 사라질 것이라 본 것.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들은 명함 산업은 이제 사양 산업이나 다름없다”며 ’링크드인’이나 범프’(모바일 명함교환 앱)와 같은 디지털 명함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10여년. 정말로 종이 명함은 사라졌을까.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비즈니스 미팅에서 실제 명함 대신 링크드인’ 프로필을 교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한국·중국 등 아시아의 사업가들은 여전히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시대라지만 대면 문화’에 친숙한 아시아권에선 직접 손을 맞잡고 이름이 적힌 명함을 교환한 뒤에야 비로소 누군가를 만났다’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테다.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 팝스타들과 메르세데스 벤츠’,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의 홍보를 담당했던 홍보 전문가 마크 보코브스키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나 중동 등 아시아 지역에서 명함 없이 사업을 하는 건 실패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 역시 아시아에선 이런 대면 접촉’이 있어야만 비즈니스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프라인 종이 명함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관리는 모바일로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기존의 명함관리 앱이 이미지 자동인식 기술을 활용해 명함 속 글자를 컴퓨터로 읽어내는 것과 달리 리멤버는 900여명의 타이피스트가 직접 정보를 기입하는 시스템을 선택했다. 최 대표는 명함마다 글자 위치와 폰트 등이 달라 이미지 자동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오히려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며 리멤버는 재택근무하는 타이피스트들이 실시간으로 수기 입력해 정확도를 높였고, 이름∙전화번호∙주소 등 명함 속 정보는 서로 다른 타이피스트에게 분산해 개인정보 누출을 방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https://youtu.be/am6fXWGQuos
(최재호 대표의 리멤버 창업 인터뷰)

지금까지 리멤버에 등록된 명함은 약 6,000만장. 위로 쌓으면 에베레스트 산 높이인 8,000m에 육박한다. 스마트폰 앱 시장의 대세가 20·30대 인것과 달리 리멤버는 40대 이상 사용자가 60% 이상을 차지하는데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쌓여있는 명함이 많다 보니 명함관리 앱에 대한 수요가 컸던 탓이다. 현재 수익모델은 직장인을 타깃으로 한 배너 광고. 최 대표는 ‘사원’보다는 대표’, 이사’ 직함을 단 경제력 있는 이용자가 많은 덕에 광고 효과가 큰 편”이라며 “향후 잠재력을 인정받은 덕에 2년 반 동안 100억원에 가까운 외부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랍 속 명함 한 장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최 대표. 스쳐 가는 사람도 잘 기억’해 사업 인연으로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아 서비스 이름도 리멤버’라고 정했다. 

“사실 명함 정리를 지금 당장 안 해도 큰일이 나진 않아요. 대신 명함 관리를 잘하면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비즈니스 기회가 새로 발굴되기도 하죠. 리멤버도 단순한 명함저장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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