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방법

세계 최초 스마트줄자 ‘베이글’ 개발한 ‘베이글랩스’ 박수홍 대표 인터뷰


‘사업은 운’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와 넉넉한 자금이 있어도 이를 살려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의 명제 역시 명확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좋은 운이 찾아와도 이를 활용할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그 기회는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잘 준비된 사람만이 운도 성공도 얻어낼 수 있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대중 모금) 모금액 전세계 상위 0.04%(135만달러, 한화 15억원). 세계 최대 모바일기기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스마트기기 분야 ‘톱 10’ 선정. 국내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 ‘월드컵 테크 챌린지’ 사물인터넷(IoT) 분야 결선 진출. 스마트줄자 하나로 창업 후 6개월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둔 박수홍(사진·32) ‘베이글랩스’(Bagel Labs) 대표는 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가 이런 운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살릴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한 요건들을 현명하게 갖춰온 남자, 박수홍 대표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만났다. 


(박수홍 베이글랩스 대표)

박 대표가 지난 1월 개발한 ‘베이글’(Bagel)은 줄과 바퀴, 초음파 센서를 활용해 길이를 잴 수 있는 세계 최초 스마트줄자다. 줄은 눈금을 확인할 필요 없이 액정화면으로 바로 측정값을 보여주기 때문에 허리·목 등 신체 둘레를 잴 때 유용하다. 작은 바퀴를 굴리는 ‘휠 모드’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사물의 길이를 잴 때 효과적이다. 천장 등 손이 닿기 어려운 먼 거리는 초음파 모드를 이용하면 된다. 줄자 외부의 버튼을 누르면 측정된 데이터가 블루투스를 통해 자동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전송되는데 이때 간단한 음성 메모도 남길 수도 있다. 

베이글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공학도 생활을 10년 정도 하다가 창업 직전 대기업 연구소에서 방탄 장갑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근무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도면 설계나 장비 등을 만들 때 줄자를 많이 사용했. 줄자로 길이를 잰 뒤 수치를 쪽지나 노트에 기록했었는데, 그 종이를 잃어버려서 길이를 다시 재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더군요. 그런 불편함이 쌓이다 보니 ‘이 문제를 내가 직접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베이글’의 세 가지 사용방법)

무게는 디지털 체중계가, 시간은 스마트워치가 표시해주는 시대인데 유독 길이만큼은 ‘스마트’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박 대표.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 속 작은 불편함을 창업의 모티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회사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던 무렵이었다. 대기업 조직의 특성상 경영진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연구 방향이 좌지우지되다 보니 조직 내 역할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2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뛰어들었다.  

- 민족사관학교를 나와 미 존스홉킨스대를 거쳐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까지 받았습니다. 회사에 남아있었다면 승승장구했을 법한 '고스펙'인데, 창업이 두렵진 않았나요. 
“당연히 두려웠죠. 부모나 지인들의 반대도 심했고요. 회사 안에선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시스템에 의해 보완이 될 수 있지만, 회사 밖은 그야말로 야생이잖아요. 보호막 없이 제 몸으로 현실에 부딪혀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제 의사대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대신 제 능력 밖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팀 구성이다. 제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이라도 홍보나 고객 관리에 실패한다면 시장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법.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량을 뽐내줄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박 대표는 인지하고 있었다.



(베이글랩스의 팀원들)

-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라면 좋은 기술자를 데려오는 게 최우선 아닌가요.
“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실력 있는 개발자만 많이 있으면 좋은 제품을 만들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소비자에게 알려져야만 판매가 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왜 우리 제품을 사지 않는 걸까”라고 후회만 하다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마케팅이나 영업, 사업 전략 등 각 부분에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기술자로만 이뤄진 조직에선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엔지니어 외에도 제품 디자이너나 영업, 마케팅 등 각자의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해줄 사람들을 구하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들어내야 하는 스타트업이니 개발 자금이 상당히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요. 
“회사를 나올 때 받은 퇴직금과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받은 돈 1,000만원이 사업 초기 자금이었어요. 개발 비용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스마트줄자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했죠. 주어진 예산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핵심 요소만을 찾으려고 했던 거에요. 주변에 보면 제품 하나에 이런저런 기술들을 다 집어넣으면서 ‘백화점식’ 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산은 1,000만원인데 1억원 짜리 아이디어를 구현하려고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사업은 현명하게 해야 해요. 진짜 핵심이 되는 기능만 넣어 시제품을 만들고 빨리 시장의 반응을 확인해보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요.” 

박 대표와 같은 사업 방식을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전략이라고 부른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사전 연구를 거쳐 제품을 만드는 전통적 사업 전략과 달리 최소 요건만 갖춘 시제품을 빠르게 만든 뒤 시장의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보완해가는 방식이다.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된 스타트업 입장에선 시제품 개발 기간과 비용을 단축하면서도 고객의 ‘니즈’를 제품에 충실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창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선 핵심 생존 전략으로도 꼽힌다. 박 대표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린 스타트업의 가르침에 집중할 줄 알았다.




“제가 홍대 앞에 자장면 집을 차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죠. 그럼 일단 홍대 길거리든 어디든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서 팔아봐야 한다는 거죠. 내 요리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고객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를 최소한의 예산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하루에 몇백 그릇씩 불티나게 팔린다면 당장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가게를 차려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실 좀 위험한 거죠. 시장이 원하지 않는 거니까요. 이런 식으로 내 사업의 핵심을 정해놓고 그걸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낮은 가격으로 검증해보는 과정이 중요해요.”

박 대표는 지난 6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것 역시 린 스타트업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시장의 반응을 알아보고 싶을 때 크라우드 펀딩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왜 크라우드 펀딩을 하게 됐나요.
“크라우드 펀딩은 시제품을 통해 선주문을 받고 나중에 실제 제품을 보내주는 방식이잖아요. 하드웨어 쪽은 제품을 만드는 제조 비용이 상당한데 돈이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외부 투자 없이 그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죠.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 시제품 하나만 보여줘도 미래의 고객들로부터 자금을 모을 수 있잖아요. 또한 모금된 금액을 통해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예측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도 상당하고요. 실제로 저희도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품을 수정했어요. 마지막으로 펀딩이 잘 되면 대중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게 되거든요.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은 마케팅 비용을 따로 지출하기 어려운 편인데, 사람들에게 회사와 제품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으니까 일석삼조인 거죠.”


- 한국이 아닌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를 이용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회사를 한국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저희가 목표로 한 시장은 사실 미국과 유럽이에요. 가구에 대한 DIY(스스로 만들기) 활동이 많은 곳이라 줄자가 생필품처럼 사용되는 지역이거든요. 저희가 35일 동안 2만5,000대를 판매했는데 이 중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팔린 것들이에요. 유럽 내 판매량은 30% 정도고요. 해외 시장을 노렸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박 대표는 “원래 펀딩 목표는 10만달러였는데 13배 많은 135만달러를 벌게 됐다”며 “덕분에 팀원들의 사기도 올라갔고 ‘일할 맛’이 생겼다”고 말했다.  


- 베이글랩스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 다음 달에 첫 제품(예상가 약 7만원)이 출시될 예정인데, 저는 단순히 스마트줄자라는 하드웨어만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줄자로 측정한 수치들을 모아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에요. 가구를 사려고 방 길이를 재는 고객에게 자동으로 알맞은 크기의 상품들을 추천해주거나,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하려는 고객에겐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한 가상의 착용 모습을 제공하는 거죠. 길이측정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인 만큼 이 영역에서 최고의 회사가 되는 것, 그게 목표에요.”




(지난 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기기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가한 박 대표의 모습(사진 위)과 미국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때의 모습(사진 아래))

퇴사 후 수개월 동안 매일 1~2시간만 자며 창업 준비에 매달렸다는 박 대표.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의 말 뒤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명언이 떠올랐다.

“돼지가 바람을 만나면 날수도 있겠지만 바람이 다 지나고 나면 떨어져 죽습니다. 태풍만 찾아다니지 말고 스스로가 약간의 바람으로도 높이 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창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창업자의 끈기와 실력이라는 의미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비즈업

당신이 몰랐던 오만가지 창업 이야기를 뉴미디어 비즈업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