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ZUP 인터뷰]세계 최고 경영대학 나와 전통시장에서 장 보는 남자



골목 상권 상생 꿈꾸는 스타트업 ‘에피세리’의 최준용 대표 인터뷰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경영학 분야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학원(와튼 스쿨·Wharton School) 출신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와튼 스쿨 출신 인재들. 그런데 이 학교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돌아와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러 다니는 남자가 있다. 골목상권의 상생을 꿈꾸는 기업 ‘에피세리’의 최준용(28∙사진) 대표의 얘기다.

최 대표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 2003년. 현지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편도 아니었던 그가 미국행을 택한 건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 때문이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미국의 교육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는데, 한 중학생이 반쯤 누워서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자기가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듣고, 선생님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에 매료돼 부모님께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말하고, 학생은 듣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있던 최 대표에겐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의 미국이 ‘꿈의 학교’처럼 보였을 터. 요샛말로 ‘현질’(온라인 게임 속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행위)’을 지원해줄 정도로 너그러웠던 최 대표의 부모는 그의 이러한 무모한 결정도 응원해줬다. 

 

“조건은 딱 하나였어요. 학교 성적을 지금보다 올리는 것. 게임도 하면서 공부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목표를 달성했죠.”

자신 있게 나섰던 미국 유학길. 하지만 최 대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영어 실력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엔 한없이 부족했던 것. 아시아계 학생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최 대표를 힘들게 했다.

 

“제가 봤던 다큐멘터리 속 모습과 현실은 다르더군요. 하지만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시간의 힘으로 이겨냈어요. 그 뒤로는 (미국) 학교가 좋았어요.” 

 

이후 최 대표는 본인이 꿈꾸던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 과목을 원하는 선생님에게 듣고, ‘지적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수학을 좋아해 한 문제를 놓고 30분 이상 다양한 풀이 과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고 한다. 

 

학교가 즐거우니 성적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 터. 그 덕에 최 대표는 ‘경영학 분야 1위’라는 와튼 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경영학을 선택한 것은 사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자신도 ‘나만의 비즈니스’에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란 타이틀에 걸맞게 와튼의 교육 과정은 수준과 질 모두 최고 수준이었다는 게 최 대표의 얘기다. 학교에 입학하면 국적과 인종, 과거 경험을 토대로 자동으로 팀이 형성돼 팀별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경청(傾聽)하기를 좋아하는 교수님들과 토론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강의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어떤 대화를 하든지 귀 기울여 듣는 우수한 교수님들이 많았죠.”

열정 많은 학생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교수들. 최 대표는 이곳에서 만난 4명의 친구와 ‘내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업 아이템은 식료품 배달 서비스였다. 당시 미국 내에서 성장 중이던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장보기 서비스를 한국에서 도전해 보기로 한 것. 다만 대형 할인점의 물품을 주로 배송해주는 기존 업체와 달리 최 대표는 한국 내 전통시장과 동네 상점들에 주목했다.  

 

“한 강의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사업적으로 성공해온 사례들을 배웠어요. 큰 매력을 느꼈고, 한국의 수많은 전통시장 소상공인들과 이런 상생 모델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시장을 택한 데에는 오랫동안 전통시장에서 의류도매업을 해온 어머니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어머니 덕에 시장에 대한 친근한 기억이 많았다고 한다. 

 

와튼스쿨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채 지난해 3월 한국에 들어온 최 대표는 부산정보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장영실 SW벤처포럼’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아이디어의 사업성을 확인했다. ‘해볼 만한 사업’이란 확신을 얻은 그는 그해 7월 ‘에피세리’(ÉPICERIE)를 창업, 서울 마포구를 중심으로 서비스에 나섰다. 마포를 무대로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최근엔 서울 전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했고, 전통시장뿐 아니라 동네 상점과도 연계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에피세리 이용자들의 재구매율은 75%가량. 에피세리와 거래하는 소상공인의 매출도 과거보다 3~10% 증가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그가 에피세리를 설립하며 목표로 잡았던 ‘상생’의 꿈을 한 단계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셈. 

세계 최고 경영 대학에서 돌아와 전통시장을 누비는 남자. 꿈꾸던 ‘내 사업’을 현실에서 일궈나가는 소회는 어떨까.

 

“창업가에겐 두 개의 감정이 존재한다고 해요. 엑스터시(ecstasy)와 디프레션(depression). 황홀하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창업이란 건 결국 가치를 새로 창출하는 일이니까 롤러코스터처럼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죠. 결국엔 내가 주고자 하는 가치가 인정받고, 이용자가 한 명씩 늘어나는 재미, 그 맛에 사업하는 것 같아요.”

/기사=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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