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업 인터뷰] "자생 능력 없는 스타트업은 '좀비'"

"스타트업이 자기 사업 모델과 전혀 상관없는 정부 사업을 하고 대회 상금만 노리고 있다면 발전할 수 있을까요? 자생 능력 없이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한다면 결국 좀비 기업이 됩니다."



행사·모임 중개 O2O(온·오프라인) 플랫폼 ‘온오프믹스’(onoffmix)의 양준철(33·사진) 대표는 스타트업계의 과도한 '정부 의존증'을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고교 시절 홈페이지 개발회사를 시작으로 10대 때 이미 두 번의 사업을 경험한 양 대표는 스타트업계에선 손꼽히는 '창업 베테랑'이다. 지난 2010년 설립한 온오프믹스가 세 번째 창업으로, 1년 버티기도 힘들다는 O2O 플랫폼 사업을 그는 7년째 이어오고 있다. "진정한 기업가라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양 대표를 서울 잠원동 온오프믹스 사무실에서 최근 만났다. 

 

양 대표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곱 살 때. 당시 중고로 얻은 대우전자의 'IQ-2000'은 '도스(DOS)'와 같은 기본 운영체제가 깔려있지 않고, 따로 문자 명령어(코드)를 외워서 입력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지금 보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지만 어린 양 대표의 눈엔 신세계이자 별천지로 보일 뿐이었다. 양 대표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컴퓨터는 코드만 입력하면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컴퓨터에 매료된 양 대표는 프로그래밍 독학을 시작했다. 낮에는 코딩 관련 책을 탐독했고 방과 후에는 학교 컴퓨터실에 남아 땅거미가 지도록 PC 통신망을 분석했다. 사설 통신망(BBS)를 직접 개설·운영까지 했던 그는 고교 1학년이었던 17세에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설립하며 창업 세계에 입문했다.   

- 첫 창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 기술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포스코에서 주최하는 통신망 개발 경진대회에 나가면서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참가한 팀은 개발자로만 이뤄졌었는데 그 대회에서 우연히 웹디자이너들이 모인 참가팀을 만났거든요. 우리는 개발을 할 줄 알고 그쪽은 디자인 기술이 있으니까 같이 사업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죠.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회사를 차리게 됐어요.

 

'10대 사장님'의 등장은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자들이 찾아와 그의 창업 스토리를 담아갔다. 하지만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잦아지면서 조직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 조직 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저만 자꾸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공동창업자들 사이에서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나도 같이하고 있는데 왜 너만 방송에 많이 나오냐'라는 불만이 가장 많았고요. 그 갈등이 심해지면서 나중엔 대표인 제가 내부 직원들에게 탄핵까지 받게 됐어요.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렸고 사업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뭘 잘 몰랐던 거죠. 그래서 창업 1년 반 만에 다 정리하게 됐어요.

 

- 두 번째 창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첫 회사를 정리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20대 사업가 한 명이 저를 찾아왔어요. '방송에서 봤다'면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사람의 신체 사이즈를 데이터화 해서 옷 입은 모습을 가상으로 보여주는 '3D 쇼핑몰' 사업이었는데, 저도 재밌는 아이템인 것 같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고 26억원 정도의 투자도 유치했죠. 그런데 돈이 생기니까 그 대표가 고급 외제차를 새로 사고 나이트클럽만 다니는 거에요. 제겐 '이게 다 영업하는 거다'라고 하면서요. 그러다 결국 두 번째 사업도 망하게 됐죠. 그 대표는 나중에 구속까지 됐어요.

 

두 번의 사업 실패는 양 대표에게 2,000만원에 가까운 빚을 남겼다. 당장 채무를 변제해야 했던 그는 대학 진학 대신 취직을 선택, 7년 동안 총 6곳의 IT 회사를 거치며 프로그램 개발일을 했다. 일종의 '창업 휴식기'를 보낸 셈. 양 대표는 이 시간 동안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온오프믹스가 지난해 연말 진행한 고객 감사 이벤트(사진 위)와 고객 초청 행사(사진 아래) 모습 [자료제공= 온오프믹스])

- 왜 기업가 정신을 고민하게 됐나요.

두 번째 창업에서 만난 대표가 결국 사기꾼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2000년대 벤처붐 시기에는 꽤 많았거든요. 제가 뭘 모르니까 몰래 뒤에서 회사를 빼앗으려고도 하고, 일부러 내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창업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안 좋아지고 있었으니,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 양 대표가 결론 내린 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요. 

정도(正道)를 걷는 거죠. 사실 창업가들이 받는 유혹 중 하나가 조금만 양아치 짓 하면 지금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고, 나쁜 돈이라도 일단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유혹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그 사람의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조금 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남보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양아치 짓을 하면 10년 뒤든 20년 뒤든 결국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거든요. 심하면 교도소 생활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 따라잡자고 저까지 나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헛짓거리하지 말고 실수 줄이면서 원칙대로 살자고 다짐한 거죠.

 

조금 느리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라는 결론을 내린 양 대표. 그래서 O2O 플랫폼 온오프믹스로 세 번째 창업에 도전했을 때에도 '고객만 바라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플랫폼이란 결국 사용자의 힘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이니, 요행 바라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 그 덕분이었을까. 온오프믹스는 별다른 광고 없이 가입자 66만명을 모집하며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엔 연매출 8억4,000만원을 올리며 손익분기점(BEP) 달성에도 성공했다. 양 대표는 "사업 초기엔 부모님 적금을 깨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면서 "창업이 쉽지 않은 만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이 길인지 고민해보고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원하는 길'을 고민해 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가끔 후배들이 찾아와서 '자기도 스타트업 창업하겠다'는 말을 해요. 그럴 때 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라고 조언하죠. 단순히 '사장'이 되고 싶어서 창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바라는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창업이라서 하는 것인지 말이죠. 스타트업 대표 중엔 그냥 '사장'이 되는 게 목표였던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엔 자기 사업과도 상관없는 정부 일감 따내고 이런저런 대회 참가하면서 상금만 받아오고 그래요. 회사 유지에만 급급한 거죠. 자생 능력 없이 외부 지원으로만 버티는 회사가 제대로 된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정부 지원이나 상금에 기대는 게 왜 위험한가요.

그런 돈으로 버티는 대표들은 기업가로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거든요. 진짜 기업가라면 투자 유치 고민도 하고 주주총회도 겪어보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과 회사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해요. 직원들 복리후생도 고민하면서 다소 어렵고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지만 배수의 진을 치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이렇게 비즈니스 모델 돌려보고 안되면 빨리 정리하고 다음 사업으로 넘어가고 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으로 겨우 회사만 연명하고 있으면 '좀비 기업'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대표는 기업가가 아니라 그냥 사장, 장사꾼인 거에요. 

 

사실 스타트업의 '정부 의존증'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1차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행사 진행자로 참석한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현 인천대 총장)은 "정부가 스타트업의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일부 스타트업들은 진짜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잘 쓴 보고서 하나로 정부 지원을 받고 연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패널로 무대에 선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역시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기업들이 있는데, 과도한 정부 지원금은 업계를 좀비처럼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 대표는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다 보면 사업의 본질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면서 "창업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창업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 양 대표님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느리게, 정도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저는 중학교 때 부모님 사업이 망하면서 정말 낮은 단계까지 내려가본 사람이거든요. 힘들 때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전 정말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더 흔들리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면서 후배 창업가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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