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ZUP 인터뷰] “내가 창업한 이유? 불 끄기 귀찮아서”

앱으로 전등불 켜고 끄는 스마트기기 ‘스위처’ 개발한 임남규 ‘아이오’ 대표 인터뷰

“전문가들이 ‘장난감’(toy) 같다며 무시하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만날 때 나는 늘 흥분된다. ‘장난감’ 같다는 것은 곧 그 생각이 좋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미 실리콘밸리의 유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창업·육성 업체) ‘와이콤비네이터’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이 남긴 말이다. 그레이엄은 “‘장난’이라 치부되는 아이디어들은 중요해 보이진 않지만 실제로는 ‘쿨’하고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라며 “우리가 살아갈 미래엔 이런 아이디어들이 시장의 주축이 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불 끄기 귀찮아 창업했다”는 임남규(28·사진) ‘아이오’(I/O) 대표의 창업 이야기는 폴 그레이엄의 말을 단박에 떠올리게 다. 창업의 계기는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아이디어로 나온 제품은 시장이 좋아할 만큼 충분히 하기 때문. 

임 대표가 이끄는 스타트업 ‘아이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집안 조명을 조절하는 사물인터넷(IoT) 기기 ‘스위처’(Switcher)를 만드는데, 따로 전기 배선을 건드릴 필요 없이 일반 조명 스위치 위에 '스위처'만 부착해두면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마트폰 앱으로 전등을 켜고 끌 수 있다. 사용자가 집에 없더라도 원하는 시간을 예약해두면 해당 시간에 불이 켜지는 기능도 있다. 

“2년 전 학교 지인들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한 명이 ‘불 끄기 귀찮다’는 말을 하는 거에요. 그 대화를 본 다른 친구가 자기가 공대 수업에서 배웠던 기술을 써서 기초적인 설계도면을 그려서 보내주더군요. ‘이런 방식이면 불을 자동으로 끌 수 있지 않냐’면서. 저도 평소에 불 끄기가 귀찮았던 터라 실제로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임 대표의 말처럼 아이오는 20대 공대생 세 명의 철없는 ‘작당’이 첫 시작점이다. 원격제어를 위한 블루투스 기능과 배터리, 앱의 신호를 받아 전등 스위치를 물리적으로 켜고 끌 수 있는 모터를 집어넣는 과정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완성품이 나왔고 임 대표는 이를 “자랑삼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올렸다고 한다.

“사실 좀 자랑하고 싶었어요(웃음). 주변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몇 개 더 만들어주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댓글이 정말 많이 달리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달라고도 하고. 그걸 보고 ‘이걸로 사업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

임 대표는 “시작은 가벼웠지만 창업을 결심한 뒤론 진지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집마다 전등 스위치의 모양이 다른 점을 고려해 설계도면을 다양화했고,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앱 디자인 여러 번 다듬었다. 주 사용자들이 경제적 여유가 적은 20~30대 자취생인 점을 감안해 3D 프린터로 내부 부품들을 직접 출력해 만들면서 제조 원가와 판매 가격을 낮췄다. 첫 시제품이 나온 뒤엔 고객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인터뷰도 진행했다. ‘아이디어’를 제대로 된 ‘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틀을 다진 것이다. 



그 노력이 빛을 본 것일까. 지난해 6월 국내 최초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입주기업으로 선정되며 투자를 유치했고 이후 중소기업청 ‘팁스’(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선발돼 자금 지원도 받았다. 임 대표는 “우리가 기술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제품을 발전시켜왔던 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저 자신의 ‘귀차니즘’을 해결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사업을 하면서 완전히 생각이 변했어요. 한 고객께서 ‘야맹증이 있어서 밤에 불 끄러 가다가 자주 다쳤는데 스위처 덕분에 편해졌다’는 리뷰를 남겨주셨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저희도 사명감이 생긴 거죠. 우린 그냥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일상 속 ‘비타민’ 같은 제품을 만들었던 것뿐인데, 누군가에겐 ‘페인킬러’(치료제)처럼 작용했구나 싶더라고요. 앞으로도 사람들의 진짜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제품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우리는 ‘창업’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뭇 진지해지곤 한다. 그 뒤에는 거창한 창업의 계기가 존재할 것 같고 창업가의 가슴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첫 시작은 하버드 캠퍼스에서 최고 ‘얼짱’을 뽑는 ‘이상형 올림픽’ 사이트에 불과했고, ‘영국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는 제임스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한 것은 단지 “선풍기 소리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레이엄의 말처럼 오히려 ‘장난’ 같은 아이디어가 혁신을 이끌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 끄기 귀찮아 창업했다”는 임 대표의 창업 스토리가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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