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ZUP 인터뷰] 억대 연봉 버리고 ‘청소하는 CEO’가 된 엄친아

가사도우미 O2O 연계 서비스 ‘와홈’(WAHOME) 이웅희 공동대표 인터뷰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 명문대를 나와 세계 금융업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라는 곳에 입사했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대다수가 선망하는 ‘성공 방정식’을 이어갈법 했지만 곧 제 발로 회사를 나와 ‘밥 굶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삶을 택했다. 모건스탠리 명함 대신 ‘빗자루’를 집어 든 사장님이 된 이웅희(29‧사진) 와홈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이웅희 와홈 공동대표)

캐나다에서 태어나 줄곧 외국에서 살았던 이 대표는 소위 ‘엄친아’ 엘리트였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인 코넬대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 홍콩지사에 입사했다. 약 4년간 대기업 인수합병(M&A)과 국제 채권 발행 업무를 담당하며 ‘큰 물’에서 놀던 이 대표는 5년 차에 접어들며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모시고 있던 직장 상사를 보며 향후의 5년을 상상해봤어요. 그때 제 상사는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있지만, 매일 새벽 3~4시에 퇴근해야 하고 자기계발의 기회 적어 보였거든요. 저 역시 5년 뒤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루틴’하게만 살고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삶에선 도저히 즐거움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꿈의 금융회사’라 불리는 곳을 때려친 이 대표는 곧 홍콩의 벤처캐피털(VC)이자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육성기관)인 ‘자비스’(Jaarvis)에 합류했다. 애초엔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었으나 “현장을 더 경험해보라”는 옛 멘토의 조언을 따랐다. 모건스탠리에 대기업이나 상업은행 등 ‘굵직한’ 곳만 상대해봤던 이 대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스타트업을 경험하며 그 가능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모건스탠리 홍콩 지사에 근무하던 시절의 이 대표)

“자비스에 들어가서는 주로 스타트업 투자와 경영지원을 담당했어요. 이때 한창 ‘온디맨드’(On-Demand주문형) 서비스 붐이 일고 있었는데 관련된 스타트업에 투자만 하면 대박이 나더군요. 사업 기회도 많고 굉장히 역동적인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이 대표가 투자를 결정한 곳 중엔 물류 스타트업 ‘고고밴’(GOGOVAN)도 있었다. 고고밴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화물주와 차주를 연계하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화물배송 서비스로, 자비스를 거친 후 수백억의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창업 2년 만에 아시아 최대 물류 업체로 발돋움했다. 이 대표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세계에 매력을 느꼈다. 

“제가 투자를 결정한 회사가 얼마 안 지나 몇백 억, 몇천억짜리로 커나가는 걸 보니 신기했어요.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배가 아프기도 했고요(웃음). 그냥 투자자로만 남아있는 게 싫어서 ‘직접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죠. 아직 20대고 결혼도 안 했으니까 딱히 잃을 것도 없잖아요.

젊음을 무기로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그가 선택한 창업 아이템은 청소. 집 청소를 원하는 고객과 가사도우미를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O2O 서비스로, 지인에서 공동창업자 관계로 발전한 한상인(34) 공동대표의 제안이었다. 이미 미국에서 비슷한 업체들이 등장해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이 대표가 벤처투자자로 활동하며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도 O2O 서비스였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가사도우미 O2O 연계 서비스 와홈의 홈페이지)


억대 연봉의 투자자에서 밥 굶는 CEO로

그러나 막상 창업을 시작해보니 현실은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와홈’이란 이름으로 법인을 세운 뒤 투자자를 만나러 다녔지만 “당신들이 청소에 대해 뭘 아냐”는 질책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번듯한 사무실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숫자 놀음만 하던 이가 청소업에 뛰어든다니 투자자들 눈에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것.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이가 막상 투자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창업을 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더군요. 투자자를 만나러 가도 매출 등 숫자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요. 저 역시 투자자로 있을 때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런저런 사업 조언을 많이 했었는데, 직접 창업을 해보니 그게 다 ‘수박 겉핥기’식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불킥’(부끄러워 자다가도 이불을 찬다는 뜻)도 많이 했죠.”

현장 경험을 쌓아보려 인력사무소도 여러 곳 찾아가 봤지만, 20대 남성이 가사도우미 일을 따내기란 쉽지 않았다. 일감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모님은 “고생 그만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이 대표는 한번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대신 바닥부터 훑어가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이 대표는 강남구 일대 부동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무조건 다른 업체의 절반 값에 청소해주겠다”며 명함과 함께 자양강장 음료를 건네면, 열에 다섯은 빌딩이나 이사청소 일감을 내어주곤 했다. 이른 아침엔 양재동 화훼시장으로 향했다. 와홈의 주 고객층인 30~60대 여성에겐 평범한 전단지 대신 꽃 한 송이를 건네는 게 더 효과적인 홍보법이란 판단에서다. 

“매일 아침 노란 소국을 한 아름 사서 근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어요. 꽃 한 송이를 먼저 드린 뒤 팸플릿을 드리면 제 이야기를 적어도 2분 정도는 들어주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생각보다 많은 고객을 모을 수 있었어요. 이분들이 주변에 다시 입소문을 내주신 덕에 주문도 꽤 늘었죠.”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처음엔 진정성을 의심하던 투자자들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와홈은 두 번에 걸쳐 총 25억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을 당시 월 60건 수준이었던 거래 건수도 지금은 8,000건 정도로 늘어났다. 현재 월 매출은 2억원에 달한다.  


 

(숙박공유업체 ‘에어앤비’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와홈 멤버들(사진 위)과 지난해 최대투자자 배용준씨와 함께한 이웅희∙한상희 공동대표의 모습(사진 아래).)

창업 후 1년 7개월 차. 매달 30% 이상 성장하며 회사도 건실해졌고 넉넉한 투자금에 여유를 부릴 법도 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허리띠 졸라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출장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 시간대 저가항공을 골라 타고, 친구집 방바닥에서 자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여름엔 청바지 한 장으로 버티며 ‘단벌신사’ 생활을 자처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에 있을 땐 매일 항공기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호텔에서만 묵었으니까 항상 풍족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에요. 투자를 많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업을 위해선 어찌 됐든 무조건 최대한으로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경우엔 진짜 밥을 굶기도 하죠.”

억대 연봉을 받던 금융업계 엘리트에서 밥까지 굶는 스타트업 CEO의 삶으로 돌아선 이 대표. ‘지갑’이라고 할만한 것은 노란 고무줄로 칭칭 감은 자신의 명함 몇 장이 전부이지만, 그는 지금의 생활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저는 이렇게 ‘허접’하게 사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예전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일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좀 돌아가고 어렵더라도 제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거든요. 아직은 젊으니까 좀 더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땅바닥에서 잔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요?”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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